이민법인대양
 
45년 전 캐나다로 이민한 조성준(76)씨는 21년째 토론토 시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선수(選數)가 7선에 달하고 중간에 낙선한 적도 없다.
조 의원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토론토에 나무 3만 그루를 심고, 토론토 동물원 이사장을 4차례 연임했으며 한인회관 재산세 감면과 한국노인회 모금 운동에 앞장서고 한인2세 정치인 육성을 위한 글로벌유스리더스를 조직하기도 했다.

1936년 인천에서 4남4녀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난 조 의원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매일 밤 사전을 베고 잘 정도로 영어공부에 몰입한 결과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주한 미국대사관에 취직했다.

그런 그가 왜 혈혈단신 캐나다에 이민 갔을까? 1967년 초 남동생이 이민을 가려고 병아리감별사 자격증까지 따서 캐나다 이민관한테 인터뷰를 받을 때 조 의원이 통역을 도와주러 갔다.
그런데 이민관이 조 의원의 영어실력에 감탄해 "당신 정도면 선생님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며 이민신청서 작성을 권유했고, 두 달 뒤에 통지가 왔는데 동생은 떨어지고 그만 이민허가를 받았다.
조 의원은 "대사관에 계속 일한다 해서 외교관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유학을 가서 박사가 되고 싶었다" 며 "이민을 하면 학비가 싸기 때문에 5년만 살다 올 생각으로 떠났었다"고 회상했다.
1967년 3월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한 그는 먼저 이민 온 한인 가정에 더부살이하며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당시 밴쿠버의 한인은 모두 합쳐 20명 남짓할 정도로 이민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처음 구한 직업은 해산물레스토랑의 접시닦이였다. 쇠 수세미로 생선그릴을 닦다 보면 손톱 밑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는 돈을 못 모으겠다는 생각에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가장 북쪽의 석면광산에 광부로 취직했다.
그는 다섯 달 동안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광산에서 일하고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웨이터로 일하다 새벽 1시까지 술집 청소부로 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하루 대 여섯 시간만 자면서 5천 달러를 모아 밴쿠버로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뿌듯하던지, 모텔 침대 위에 돈을 뿌려놓고 그 위에 뒹굴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남을 돕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아동복지단체에서 일하면서 토론토대학원 사회사업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내친김에 교육학 석사까지 받았다.

1988년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시고, 와신상담 끝에 1991년 토론토시를 포함한 6개 도시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해 의원 28명 중 유색인종으로는 유일하게 당선됐다.
조 의원은 1994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6년 그리고 2010년까지 내리 7선에 성공했다. 1998년부터는 6개 도시가 토론토시로 통합됐다. 시의원 임기는 2006년부터 3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 이번 임기는 2014년까지다.

그는 "7선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봉사활동에 있다고 본다" 며 "어머니가 항상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라 하셨기에 시의원을 하면서 백인, 흑인, 동양인할 것 없이 도움을 청하면 성심 성의껏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만 유지되면 시의원 8선 도전은 물론 더 큰 도전도 할 것"이라며 "도전을 안 하면 하나님도, 주변 사람들도 도우려야 도와줄 수가 없지 않느냐"고 다시 한 번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계 이민 2세인 대니 서(35.한국명 서지윤)씨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운동가이자 친환경 생활전문가이다.
불과 12세의 나이에 환경운동가로 나선 그는 1995년 사회봉사자에게 주는 알버트 슈바이처 인간존엄상을 받았고, 1998년 미국잡지 피플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5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9년 워싱턴 포스트지는 그를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청년'이라고 극찬하며 특집기사를 내보냈었다.

또 오프라윈프리쇼를 비롯한 다수의 유명 TV토크쇼에 출연했으며 국내에는 2001년 삼성그룹 광고모델로 등장해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고,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미국 첫 순방 시 만났던 차세대 지도자급 한인동포 11명 가운데 포함되기도 했다.

그는 1977년 4월2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4월22일은 공교롭게도 1970년부터 미국의 환경보호자들이 정한 `지구의 날'이다. 서씨는 "지구의 날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내가 환경운동가가 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며 "당신이 지구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날에 태어났다고 생각해봐라. 무엇이든 행동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11살 때 치킨버거를 먹으며 TV를 보던 중 닭과 돼지가 도살당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식주의자가 됐고, 1989년 12번째 생일날 친구 7명과 함께 단 돈 23달러를 가지고 `지구 2000'이라는 청소년 환경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마을 숲 개발을 막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모피 반대운동, 고래잡이 반대운동, 초ㆍ중등학교 해부실험 거부운동 등을 벌이면서 지지자를 모아 `지구 2000'을 회원 2만6천명의 미국 최대 청소년 환경단체로 성장시켰다.
호기심 많고, 외향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아이였던 서씨는 20세가 된 1997년 "이젠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라며 `지구 2000'을 해체했다.

서씨는 "지금은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열려있지만 `지구2000'은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 수 만 명의 청소년이 환경보호라는 한 가지 이슈를 위해 하나로 묶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같은 고등학교 졸업생 170명 가운데 169등이라서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고 친환경 생활전문가(Environmental lifestyle expert)의 길을 선택했다.
서씨는 "성적이 안 좋아 대학에 갈 수 없었지만 저술활동 등 내 할 일을 열심히 한 결과 버클리대학교의 학위수여식에서 연설을 하는 등 여러 대학에서 강연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친환경 생활전문가'란 환경보호 운동을 넘어 중고 물건의 가치를 발견하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차를 타야 하는지 등 환경을 위한 삶의 방식을 코치해 주고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서씨는 "성인이 되어 집을 구하고 가구를 비롯한 살림살이를 나만의 방식으로 채워 넣었는데 이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대릴 한나 등 유명 연예인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며 "정보를 나눠주고자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책과 칼럼을 쓰고, TV출연이나 강연을 하다 보니 내 이름을 딴 친환경 생활용품 브랜드도 런칭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환경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세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을 낸 데 이어 `아름다운 청년 대니 서의 집'이란 책을 시작으로 친환경적인 집 꾸미기, 파티방법, 선물포장법, 재활용법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하고 8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그는 "장기 계획이라고는 세워본 적이 없지만 어떤 방식이든 친환경적인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며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행동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