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21년 동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지역의 중ㆍ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2009년 한인 최초 상원의원에 오른 연아 마틴 (47.한국 명 김연아)씨는 한인 차세대 양성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그녀는 2008년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로부터 여성이며, 교육자라는 점 외에 소수민족인 한국계의 대표 자격으로 상원의원에 지명됐고, 이듬해 1월 수도 오타와의 국회의사당에 입성했다.

75세까지 '종신'으로 의원직을 수행할 수 있는 그녀는 지난해 정치입문 3년 만에 상원 사무총장(Deputy Government Whip) 자리에 올라 정치력을 인정받았고, 집권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의원총회를 계획하는 임무를 맡는 등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연아 마틴 의원의 정치적 성장은 한인 1.5~2세가 캐나다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주류사회에 진출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마틴 의원은 "젊은이들이 나를 모델로 캐나다 정계에 많이 진출하기를 바란다. 나는 항상 그들의 멘토가 될 준비가 돼 있다" 며 "캐나다든 한국이든 두 나라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길을 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 확립과 정치력 향상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성장 과정과 연관이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나 청파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다 캐나다에 이민한 그는 밴쿠버에서 초ㆍ중ㆍ고교를 다녔다.
여느 한인 이민자들처럼 그녀도 처음에는 언어와 낯선 환경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으며, 한인이라는 사실을 버리고 싶을 만큼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번바이고교와 포트 무디중학교 등지에서 영어와 불어 교사로 일한 그녀는 자신처럼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들을 어루만져 주는 교직을 '목사의 의무' 처럼 여기며 21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그녀는 2003년 비영리단체 'C3(Corean, Canadian, Coactive society)'를 설립했으며, C3는 캐나다 전역의 한인 2세와 입양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캠프 코리아' 를 비롯해 리더십 콘퍼런스, 멘토십 프로그램, 각종 세미나와 파티를 통한 교류 행사 등을 열고 있다.
이 단체의 설립은 교사로 머물던 그를 정치 무대로 끌어낸 계기가 됐다. 각종 행사에 한인 대표자로 등장하는 그를 눈 여겨 보던 보수당이 하원선거 출마를 권유했다.

2007년 10월 그는 밴쿠버의 한인 밀집지역인 코퀴틀람과 뉴웨스트 민스터에서 하원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선거 당시 그의 열정과 능력을 지켜본 스티븐 하퍼 총리는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라며 그를 '상원의원'으로 지명했다.
의원이 되고 나서도 한인 차세대들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밴쿠버의 캐나다 코리아 파운데이션과 캘거리의 코리안 커뮤니티, 토론토의 코리안 캐나디안 문화연합 등과 함께 의회 내에 정치력 향상을 위한 1년 과정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오타와에 '김치 클럽'을 결성해 1.5~2세들을 하나로 묶어 나갔다.

그녀는 한국과 캐나다의 발전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양국 의원 친선협회 공동회장을 비롯해 항공협정 체결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캐나다 의회가 매년 7월27일(휴전일)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로 지정하도록 법안을 냈다.
그녀는 "양국간 정치ㆍ경제ㆍ교육ㆍ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돈독한 관계가 유지되도록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전했다.

출처 – 연합뉴스
 
 
"젓가락이 절 살렸죠."

LA에서 10여마일 떨어진 커머스 공장지대 외곽에 자리잡은 영스서플라이. 대형 창고 2개 내부에 탑처럼 쌓인 젓가락 박스들을 올려다보며 양희정(30) 사장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영스서플라이는 식당 소모품 전문 업체로는 업계 최대 공급량을 자랑한다. 젓가락 냅킨 식당 주방용 세제 등 300여 개 아이템을 LA한인타운을 비롯해 오렌지 카운티까지 770여 개 식당에 공급하며, 한달 매출이 30~40만 달러다.

그는 2005년 군 제대 후 미국에 건너왔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주점 웨이터로 생활비를 버는 고단한 이민생활이 시작됐다.
웨이터로 일하다 보니 젓가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했다. "젓가락이나 냅킨 같은 소모품만 공급하는 전문 업체가 없더라구요. 이걸 해야겠다 싶었죠."
같은 주점에서 웨이터로 일하던 이천일(40)씨와 의기투합했다. 당시 양 사장의 나이 스물다섯. 어렸지만 오히려 영업에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자식뻘인 제가 젓가락 팔아달라고 우는 소리를 하니 식당 사장님들이 다들 도와 주셨어요. 감사한 일이죠."

사업은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던 숙제가 있었다. 표백제를 쓰는 대나무 젓가락의 위생문제와 중국 현지에서 하늘 모르고 뛰는 젓가락 가격이다. 1년 사이 중국 현지 젓가락 가격은 꼭 2배 뛰었다.
그 고민은 지난달 한꺼번에 해결됐다. 조지아주에서 한인 이재석 사장이 생산하는 청양목 젓가락을 4월부터 LA에 독점 공급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청양목 젓가락은 타운 내 대부분의 식당에서 현재 사용중인 대나무 젓가락과 달리 표백제를 쓰지 않는다.

"값은 대나무와 비슷해요. 또 위생적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죠. 공급량도 안정적이니 중국 젓가락에 의존하던 데서 탈피할 수 있게 됐어요."
흑자를 내고 있지만 전액 공동구좌에 저축하고 있다. 꿈을 위해서다.
"무역으로 발판을 마련해 제조업까지 뛰어들고 싶어요. 젓가락으로 콕콕 집어내듯 성공을 골라낼 겁니다."

출처 – 미주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