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3년 전 편의점을 시작한 권우식(41)씨는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흘러 와서 가게를 시작했는지. 조지언베이 부근 미들랜드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달려가면 조그만 도시가 나온다. 권씨의 작지만 거대한 도전이 시작되는 곳, 페네탱귀신(Penetanguishene)이다.

2006년 일자리가 없어 이것저것 모색해보던 권씨 눈에 주매출 7,500달러짜리 가게가 확 들어왔다. 인수하려면 그래도 몇 만 달러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수중에 있는 돈은 달랑 1만 달러. 돈이 모자란다고 하자 마음씨 좋은 백인 주인은 선뜻 외상으로 가게를 넘겼다.
권씨가 처음 이사 왔을 때 한국인은 2가구. 페네탱귀신이라는 한국인에게 다소 기이한 이름의 동네도 알고 보면 권씨에겐 그리 낯선 곳은 아니었다. 1972년 11살 때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에 온 그는 소년시절을 백인들 동네에서 보냈다.

뾰족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메인스트릿 버라이어티’라는 지극히 시골스러운 가게를 덜컹 인수했다. 위치를 보면 장사가 절대 될 수 없는 곳이었다.
페네탱귀신 인구는 불과 8,500명. 편의점은 6개. 동네사람들만 바라보며 장사를 했다간 딱 밥 굶기 십상이었다.
주매출 7,500달러는 매달 빚 갚고 생활비 쓰고 나면 1달러도 여윳돈을 허락하지 않는 그런 수준이다. 시간이 흐르면 은근히 불같이 되살아나길 바랐는데, 언감생심(焉敢生心).
매출이 팍팍 떨어졌다. 1년이 지나자 주 매출은 4,500달러. 2007년 여름은 생사기로에 선 참혹한 시간이었다.

살기 위해 피자를 부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부인 권주은(42)씨도 적극 거들었다. 젊은 시절 레스토랑에서 일한 게 이런 때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피자 기술자 친구에게 약간 배우니 그걸로 끝. 문제는 돈. 편의점 인수도 외상으로 했는데 추가 투자까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대고 몇 푼 안 되는 적금 깨고, 신용카드에서 빚까지 내서 일단 공사를 시작했다.
오븐, 피자 테이블, 후드 등 장비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하나하나 정복해 나갔다.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고물상을 샅샅이 훑었다. 평소 신통치 않았던 손재주마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설비공사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적어도 5만 달러는 든다고 한다. 그러나 권씨가 쓴 돈은 단돈 1만2천 달러. 광고전단을 찍어 뿌렸고 뚝딱 공사를 하다가 가게손님들이 물을 때마다 피자가게를 만든다고 필요 이상의 큰 소리로 대답하는 등 나름대로 홍보에도 신경을 썼다.
시골이니까 가게 공간은 넉넉했다. 너무 넓어서 탈. 700평방피트에 장비와 손님 테이블을 마련했다.

2007년 11월3일. 잊을 수도 없다. 첫날 피자 200달러어치를 팔았다. 동네가 작다 보니 소문은 날개를 단 듯했다. 값도 싸고 맛도 있다는 평판이 자자해졌다.
젊은 부부의 피와 땀, 시간... 그리고 고뇌. 이런 것이 모두 녹아 들어간 편의점 내 피자가게는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지난 1년 계산해보니 피자 매출만 순수하게 5만 달러. 월 매출로 따지면 4천 달러. 편의점 매출도 덩달아 올랐다. 가게 인수할 때 주 매출 7,500달러를 회복하지는 못 했지만 근접한 수준까지는 일궜다. 지금은 피자가 주업인지 편의점이 주업인지 모를 지경이다.
더욱이 바로 옆에 유명 프랜차이즈 피자 가맹점이 2개나 있다. 피자노바와 피자딜라이트. 그러나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비결은? 맛과 가격이다. 그 다음 동네손님을 위한 배달. 배달 하다 보면 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담배 1갑에 우유 2팩.”

당연히 피자와 함께 편의점 단골손님도 늘어났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2007년 여름에 놀러 왔던 관광객이 다음해인 2008년에도 조지언베이에 놀러 와서 이곳 피자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작년에 먹었던 피자 맛이 잊혀지지 않아서 또 왔어요.”
이제는 주변 대형 피자점과 가격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피자 1쪽에 전문점은 3.25달러, 권씨 가게는 2.95달러. 큰 차이가 없다. 권씨는 재미있는 일화를 전한다.
“옆집 피자 전문점 직원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피자를 사먹어요.”
이제 권씨는 인근 학교 단체급식 전체를 주문받을 만큼 성장했다. 주문을 더 받을 수 있는데 시설이 따라주지 않는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권씨는 올해 안에 프랜차이즈 2호점을 열겠다고 한다.

출처 - 캐나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