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멜본에서의 신혼 생활은 좋았지만 멜본이란 도시는 둘이 살을 부둥켜 있더라도 너무나도 추운 곳이었다.
멜본의 날씨는 겪어 본 곳 중에 가장 안 좋은 곳으로 하루에도 4계절이 다 있다(Four Season in a day)는 말처럼 날씨의 변덕은 거의 상상을 초월했다.
바퀴 벌레도 살지 못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였고…그 당시 실지로 멜본에 살면서 바퀴 벌레를 본 기억은 없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멜본의 추위는 그야말로 뼈를 에이는 듯한 추위였고 새벽 바람들이 모두 날을 세운 칼 같았다.

신혼 초, 가장 춥다는 호주의 7, 8월에 취즘 공과 대학 (지금은 Monash 대학의 Caufield Campus로 변했지만)에서 새벽 3시부터 두 시간 청소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도서실을 그리고 아내는 미술실에서 일을 했다. 아내 일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바꿔 달라고 많이 매달렸는데도 엄격한 그리스인 Supervisor는 들은 체도 안하고.. 얼마나 섭섭했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멜본의 아주 추운 겨울날, 난방이라고는 전기 담요 외에는 없고 따뜻한 전기 담요에서 새벽 2시 반에 일하러 나오기 싫은 것을 억지로 졸린 눈으로 나와서 가장 지저분한 미술실 청소를 한다는 것이 보통의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새벽 청소를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옛 생각에 가끔 밥도 사주고 격려를 해주곤 한다.

당시 78년 형 낡은 도요타 코로나 시동을 어렵게 걸어서 15분간을 가서 점호 받고 바로 실전 배치되어 두 시간 일하면 콧등에 땀이 날 정도다.
그 때 시간당 약 A$13(지금은 15,000원 정도이지만 그때는 A$1에 500원대 정도였으니까 약 7,000원) 정도로 둘이 일하면 일당 A$50정도는 챙겼었다.

내가 호주 오기 전에 86년도 대졸 초봉이 35만원 정도였으니 하루 2시간 일하고 그 당시 화폐 가치로 비슷한 금액을 받으니 괜찮았었다는 생각으로 청소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현재의 호주 최저 임금은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약 A$18(약 21,000원정도)로 25년이란 세월을 비교하면 그다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멜본에는 Greek(그리스인)이 많아서 제 2의 아테네라는 말이 있다.
우리 Supervisor는 전형적인 Greek 아줌마였는데 신기하게도 남부 유럽의 대부분 여자들은 처녀때는 날씬한데 나이 들면 Hip이 허리의 두 배가 되는 것 같고 콧수염이 나는 것 같다.

난 racist는 아니지만 우리 Supervisor의 행동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잘 따지기도 했고 여러 방법으로 이야기도 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괜히 입만 아프고 찍히기나 했고…

한번은 지각했다고 일당을 못 받은 적도 있고 또한 가끔 계산이 맞질 않아 이야길 하면 그냥 차일피일 미루다 넘어가서 잊어 버렸다고 근거가 없다고 해서 애써 일하고도 받질 못한 금액이 상당하다.

여하튼 나의 신혼기는 부부가 침대에서 정을 속삭여도 부족할 판에 멜본의 차가운 새벽에 청소하는 것으로 다 넘긴 것 같다.
그렇고 보니 참으로 아내를 많이 고생시킨 것 같다. 잊고 살았는데…
청소가 끝나서 집에 돌아 와서 약 두 세시간 자고 둘 다 학교로 가는 그런 삶이 약 1년 정도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때는 주위에 워낙 고생하는 유학생들이 많아 청소 자리도 Waiting List가 길었다.
공장에서 밤새 일하는 친구도 많았고…

꼭 블랑카 같은 삶이었다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지금과는 달리 부모님께서 송금을 해주는 생활비로 편하게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경제적 괴리감은 전혀 없었고 서로를 위로하며 밤샘 일을 당연시하며 지냈던 것 같다.

호주 한인 사회는 월남 패망 이후 Boat People과 함께 호주로 넘어 온 파월 기술자 그룹과 그 가족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청소업으로 성공하신 한인 교포 분들이 많아 호주에 도착한다면 청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또한 1988년 호주 건국 200주년(Bicentennial)의 전면 사면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도 상당수였으나 사면이라는 행운은 있질 않았다.

시드니에서도 학교를 다니면서 Part Time Job으로 청소를 했는데 그 때는 그래도 한국 사람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정도 있었고 끝나면 소주도 마시러 가곤 해서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시급은 약 A$10(11,000원)정도로 조금은 작았다만 Cash Payment이기에 멜본에서 A$13을 받아도 세금을 제하곤 그다지 차이가 나질 않았다.
추후에 Tax Return(호주는 1년에 한번 세금 신고를 하고 환급 받는 제도가 있다. 청소를 했을 적에는 주로 유니폼도 없었다만 세탁비, 세제 등의 생필품 등 청소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들을 전부 신고해서 받는다)으로 받기도 하지만…

결혼 전, 시드니에 있을 때 교회에서 알게 된 한국 분께서 청소 일을 잘 주셔서 주로 House 청소를 많이 했고 그 것도 시드니의 부촌인 Double Bay, Mosman 등의 저택을 많이 드나들었고 람보기니 등의 고급차도 다 내 손을 거쳐갔다.
그 분은 같은 교인들에게도 일거리를 많이 주셨고(지금도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Community가 형성이 되는 것이 많다.) 늘 웃으며 일하셨고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분들의 특유의 성실함으로 조금씩 사업을 넓혀 가는 것을 직접 목격(Client로부터 일을 계속 소개 받는 것) 하는 것이었다.
청소업은 일을 잘한다면 주위의 소개를 잘 받고 타인에게 양도나 매매 형태까지 이어져서 잘만 하면 돈을 모으기에는 매우 좋은 직종중의 하나였다.

참 좋으신 분이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연락이 되질 않으니 꼭 다시 한번 뵙고 싶은 마음 가득 이다.

자료 – 유영석 법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