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미국 이민 사상 최초로 한인1세 직선시장에 오른 강석희(59)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 그는 백인이 주류를 이루는 인구 21만여명의 도시 어바인에서 2004년과 2006년 연거푸 시의원에 당선된 뒤 2008년에는 비(非)백인계로는 처음으로 시장 자리에 올랐다. 이어 2010년에는 어바인 시장선거 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인 64.1%로 재선에 성공했다.

강 시장은 "말을 많이 하면 지게 돼 있다. 항상 들어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승리한다"며 "조그만 이슈라도 간과하지 않고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미국사람만큼 영어를 잘할 수는 없었다"며 "진심으로 말하는 태도와 나를 낮추고 주민을 섬기는 자세가 통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강 시장은 한국에서 초ㆍ중ㆍ고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내성적인 성격 탓에 줄반장도 한 번 못 해 봤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대 입학 후 영어동아리인 `파인트리 클럽'에 가입하면서 영어연극 무대에 오르거나 영어웅변대회에 나가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동아리 회장도 맡으면서 자연스레 리더십을 습득했다. 강 시장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줄 알았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잠재된 끼를 발견했다"며 "그때 영어웅변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시의원, 시장선거 연설에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고 회상했다.

강 시장은 1977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뒤 15년 전 이민을 간 형이 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독립하겠다며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서킷시티에 세일즈맨으로 취직했다. 그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서비스 정신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해 서킷시티의 유일한 아시안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다.

강 시장은 "어렸을 때부터 형이 있는 미국에 가겠다는 생각을 했지, 미국에서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서킷시티에서 일했던 15년은 돌이켜보면 시장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세일즈맨이나 시장이나 고객을 섬긴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말했다.

삶의 진로를 바꾼 계기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이었다. 한인 가게들이 불타는 것을 목격하고는 한인사회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 뒤로 한미장학재단에서 10여 년간 이사와 회장을 역임하고, 한인사회 옹호단체인 한미연합회 오렌지 카운티의 이사장도 맡았다. 또 한미민주당협회를 창당하면서 정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다졌다.

강 시장은 2004년 시의원에 출마하면서 매일 4시간씩 다섯 달 동안 유권자 2만 가구를 방문하는 `가가호호(家家戶戶)' 전략을 펼쳤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시의원이 되려는지 설득했고 유권자들은 "표를 달라고 직접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흔쾌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강 시장은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가정방문을 계속해 지금까지 4만가구 이상을 찾아갔다. 어바인시 전체 유권자 수가 11만5천여명이니 유권자의 70% 정도를 만나본 셈이다.

강 시장은 "좋은 일꾼을 만들려면 좋은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며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재정 투입을 아끼지 않아 `교육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올해 6월 예비선거를 거쳐 11월 연방하원에 도전한다.
강 시장은 "재미동포가 200만명이 넘었음에도 연방의회에 한인사회를 대변할 대표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지자체장으로서 업적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능력을 펼쳐보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