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조중재(56)씨는 비즈니스 달인이다. “내가 아는 게 뭐 있느냐”며 몸을 낮췄지만 목소리에 범상치 않음이 묻어난다. 1972년 약관(弱冠) 스무 살에 부모 따라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37년. 수십 가지 직업을 거쳤다. 식품 영업사원, 제약회사 영업사원, 편의점 운영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오랜 풍상 끝에 내린 결론. 한 가지 장사만으론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다. 두 가지 이상 아이템을 섞어 놓아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당시 조씨가 머릿속에 각인한 3대 원칙. ◆첫째, 서로 확실하게 다르면서도 어울릴 수 있는 아이템 두 가지를 잡자. ◆둘째, 구질구질한 품목은 과감히 버리자. ◆셋째,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될 만한 곳으로 가자.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리치먼드/심코 4거리 코너를 점 찍어두고 임대료를 물어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거리에서 약간 비껴선 곳을 택했다. 그래도 월 7천 달러.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6년 3월 편의점 문을 열었다. 이름은 ‘JC푸드마켓’. 조중재씨 본인과 부인 조세실리아(52•은숙)씨 이름 첫 자에서 따왔다. 새로 만든 가게였지만 위치가 나쁘지 않아 월 매출 1만 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임대료가 7천 달러. 편의점 매출만으로는 어림없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조씨는 또 다른 준비에 들어갔다. 빈 공간은 세탁소 디포용이었다. 세탁물 정리 테이블, 옷걸이, 컴퓨터. 필요한 장비는 이게 다였다. 가게 전체를 세팅 하는데 든 투자비는 10만 달러. 이 가운데 세탁소 디포에 든 비용은 1만 달러도 채 안 된다. 거저인 셈이다. 편의점 개업 후 딱 1년 만인 2007년 3월 세탁소 디포도 드디어 문을 열었다.

고객 신뢰. 조씨가 세탁소 디포를 열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대목이다.
이를 위해 첫째, 컴퓨터를 도입했다. 세탁물 접수에서 건네줄 때까지 전 과정을 컴퓨터로 처리한다. 컴퓨터는 재래업종의 낡은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 위력적이었다. 둘째, 모든 손님들 이름을 입력해서 두 번째 만났을 때 반드시 이름을 불러줬다. 셋째, 모든 손님들에게 본인이름을 새긴 세탁물 가방을 선물했다. 감동하지 않고 배겨낼 손님이 있을까? 지금 디포 컴퓨터에 입력된 이름은 1천 명. 이 가운데 단골이라고 믿어도 될 만한 손님은 400명에 이른다.

세탁소 디포만으로 임대료와 기타 운영경비를 충당한다. 그렇다면? 월 7천 달러 이상, 연 10만 달러 정도 남는다. 덕분에 편의점도 궤도에 올랐다. 편의점은 여름 성수기 땐 2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조씨는 내친김에 제2 점포를 올해 안에 낼 계획이다. 이미 건물주인과 협상을 끝냈다. 다운타운에서 또 다른 성공 팡파르가 들려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출처 - 캐나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