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인대양
 
김씨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 식당과 편의점이 함께 있을 것. 지저분하고 장사 안 되고, 그래서 값까지 싸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이 집이 그랬다. 번듯한 거 좋아하는 한인들이 이런 집을 거들떠 볼 리 만무. 이미 여러 사람이 사겠다고 들렀지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다 한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가격도 만족할 만큼 쌌다.

98년 10월15일은 김균태씨가 허름한 식당 겸 가게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날. 먼저 ‘R&M’이라는 간판을 내렸다. 그리고 동네사람들에게 가게 이름을 공모했다. 상금은 100달러.

김균태씨의 ‘락우드에서 뿌리내리기 작전’은 이렇게 동네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식당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요리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문학과 출신인 김씨는 한국서 회사 다닐 때 전자 구매를 맡았었다. 89년 이민 와서 비즈니스는 엄두가 나지 않아 직장생활로 방향을 잡았다. 하던 일 계속하고 싶어 조지브라운대에 입학해 컴퓨터를 공부했다.

다행히 전자부품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생활은 언제나 쪼들렸다. 이대로 가다간 돈을 모으기는커녕 결국 있는 돈 다 축내고 미래는 더 불안해질 것이란 사실을. 97년,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돈을 벌자.”

락우드(Rockwood)라는 동네. 인구 4천 명 소도시 기찻길 옆 빛바랜 단독 건물에서 김균태씨의 10년 도전은 막이 올랐다.

건물 사는 데 돈을 다 털어서 여유자금은 한 푼도 없었다. 겨우 간판 고치고 청소하고 좀 깔끔하게 정리하고... 그게 다였다. 그래도 장사는 잘됐다. 초기 주매출은 가게 식당 합해서 6천 달러에도 못 미쳤다. 잘해야 편의점 4천 달러, 식당 2천 달러.

돈을 버는 족족 가게를 고치고 인테리어를 손보고 레스토랑 테이블을 바꾸는 데 쏟았다. 매출은 매년 늘어나 편의점 주 1만3천 달러, 식당 6천 달러까지 올랐다. 6천 달러짜리 가게가 3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런 걸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지 않던가.

2002년 팀호튼스가 인근에 진출하려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걸 직감했다. 동네 유지들, 시장 등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아둔 게 도움이 되었다. 동네 비즈니스 다 죽는다는 명분 앞세워 팀호튼스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다행히 팀호튼스는 물러났다.

싸움에서 이기고 나니 고민이 몰려왔다. 과연 여기서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떠나야 할까. 김씨가 번민하고 망설이면 부인 채보영씨가 대신 고민을 맡아줬다. 김씨는 어떤 결정이든 부인 결재 후에야 실천에 옮겼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네귀신이 되기로 작정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 그 초심을 잃지 말자. 여기에서 돈을 벌었으니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자.

레노베이션 설계는 토론토에서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인 이철용씨에게 맡겼다. 2004년 공사를 시작했다. 30만 달러에 3~4개월을 목표로 했는데 도중에 욕심이 생기면 그때마다 설계를 변경해 고급자재를 썼다. 건축비는 50만 달러로 늘어났고 공사기간도 1년을 끌었다.

지금은 편의점 매출 주 1만5천 달러에 식당 1만2천 달러. 종업원 15명. 이 정도 고용창출이면 지역사회에 충분히 기여하는 셈.

또 하나, 편의점과 식당 중간에 숨겨진 효자가 더 있다. 커피기계 3대. 김씨는 정확한 판매 수량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기자의 협박(?)에 굴복했다. 하루 600잔! 월 2만 달러!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이것만 해도 아주 잘나간다는 편의점 매출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름 덕분일까? 기찻길 옆 기적소리 울리지 말라고 휘슬스탑(Whistle Stop)이라 이름 지었더니 호루라기는 멈췄고 팡파르만 우렁차다.

출처 - 캐나다 한국일보